조지프 존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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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프 존 톰슨은 영국의 물리학자로, 1856년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1940년 사망했다. 그는 음극선 실험을 통해 전자를 발견하고 원자 모형을 제시하여 190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톰슨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으며, 동위원소 연구에도 기여했다. 그는 또한 기사 작위와 오더 오브 메리트를 받았으며, 다양한 학술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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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존 톰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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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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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정보 | |
본명 | 조지프 존 톰슨 |
출생 | 1856년 12월 18일 |
출생지 | 잉글랜드 맨체스터 치텀힐 |
사망 | 1940년 8월 30일 |
사망지 | 잉글랜드 케임브리지 |
학력 | |
모교 | 오언스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문학사) |
박사 지도 교수 | 레일리 경 에드워드 존 라우스 |
지도 학생 | H. 스탠리 앨런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 찰스 글로버 바클라 닐스 보어 막스 보른 데벤드라 모한 보스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 윌리엄 헨리 브래그 해리엇 브룩스 대니얼 프로스트 컴스톡 T. H. 래비 엘리자베스 레어드 폴 랑주뱅 로버트 오펜하이머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 어니스트 러더퍼드 제프리 잉그램 테일러 조지 패짓 톰슨 존 실리 타운센드 발타사르 판데르폴 찰스 톰슨 리스 윌슨 존 젤레니 |
경력 | |
근무 기관 |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 |
케번디시 물리학 교수 | 1884년 - 1919년 |
왕립 학회 회장 | 1915년 - 1920년 |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 | 1918년 - 1940년 |
연구 분야 및 업적 | |
분야 | 물리학 |
주요 업적 | 전자 발견 톰슨 문제 톰슨 산란 깁스-톰슨 방정식 전자기 질량 질량 분석법 질량 대 전하 비율 플럼 푸딩 모형 안정 동위 원소 도파관 톰슨 (단위) "델타선" 용어 만듦. |
수상 | |
수상 내역 | 스미스 상 (1880년) 로열 메달 (1894년) 휴즈 메달 (1902년) 노벨 물리학상 (1906년) 엘리엇 크레슨 메달 (1910년) 코플리 메달 (1914년) 앨버트 메달 (1915년) 프랭클린 메달 (1922년) 패러데이 메달 (1925년) 돌턴 메달 (1931년) |
가족 관계 | |
배우자 | 로즈 엘리자베스 페이지 (1890년 결혼) |
자녀 | 조지, 조앤 |
친척 | 조지 에드워드 패짓 (장인)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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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856년 12월 18일 잉글랜드 랭커셔주 맨체스터의 치탐 힐(Cheetham Hill)에서 태어났다.[59] 그의 어머니 에마 스윈델스(Emma Swindells)는 현지 섬유업계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 조지프 제임스 톰슨(Joseph James Thomson)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증조부가 세운 골동품 서점을 운영했다.[3][59] 이 때문에 성의 철자가 스코틀랜드식이다. 그에게는 두 살 어린 남동생 프레더릭 버논 톰슨(Frederick Vernon Thomson)이 있었다.[3] 톰슨은 내성적이면서도 독실한 앵글리칸 신자였다.[4][5][6]
어린 시절 작은 사립학교에 다니며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59] 1870년,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인 14세에 오언스 칼리지(Owens College, 현재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했다.[7][59] 그의 부모는 그가 기관차 제조업체인 샤프, 스튜어트 & 컴퍼니(Sharp, Stewart & Co.)의 엔지니어 견습생이 되기를 바랐으나, 1873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이 계획은 중단되었다.[3][59] 오언스 칼리지에서 그는 물리학 교수 발푸어 스튜어트(Balfour Stewart)의 영향을 받아 물리학 연구에 입문했으며,[7] 접촉 대전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여 첫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8]
187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로 진학했다.[59] 1880년 수학 학사 학위(수학 트리포스(Tripos)에서 2등 랭글러(Second Wrangler)[9] 및 제2 스미스상[11])를 받았고,[11] 1881년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가 되었다.[10] 1883년에는 아담스상(Adams Prize)과 함께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1][60]
1884년 캐번디시 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다.[60] 그의 제자 중에는 훗날 유명해진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있으며, 러더퍼드는 톰슨의 뒤를 이어 캐번디시 교수직을 맡게 된다. 1890년, 톰슨은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메리 더 레스 교회(Little St Mary's, Cambridge)에서 로즈 엘리자베스 패짓(Rose Elisabeth Paget)과 결혼했다.[12] 로즈는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교 의학 교수였던 조지 에드워드 패짓 경의 딸이었으며,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톰슨의 강의와 실험 시연에 참석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다.[12] 부부는 아들 조지 패짓 톰슨과 딸 조앤 패짓 톰슨(Joan Paget Thomson)을 두었다.[13][14][60] 조앤은 아동 도서 작가이자 전기 작가가 되었다.[13][14]
톰슨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생님으로서 현대 과학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연구 보조원이나 지도 학생들 중 다수가 훗날 물리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어니스트 러더퍼드, 윌리엄 헨리 브래그, 막스 보른,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그의 아들 조지 패짓 톰슨 역시 전자의 파동성을 증명한 공로로 1937년 노벨상을 수상했다.[60] 톰슨 자신과 그의 아들을 포함하여 총 7명의 제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60]
1906년, 기체 방전(가스의 전기 전도)에 대한 이론적, 실험적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60] 1908년에는 기사작위를 받았고,[60] 1912년에는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60] 1884년 6월 12일 왕립학회의 펠로우로 선출되었으며, 1915년부터 1920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61] 1914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원자 이론(The atomic theory)'이라는 주제로 로마네스 강연을 했다.[60] 1918년부터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이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60]
1940년 8월 30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묘소는 아이작 뉴턴의 묘 바로 옆에 위치한다.[60]
3. 업적
1884년 12월 22일, 조지프 존 톰슨은 캐번디시 물리학 교수직에 임명되었다.[15] 당시 그는 실험 물리학 분야의 경력보다는 수학자로서의 뛰어난 재능으로 더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임명은 다소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16] 그는 캐번디시 연구소를 이끌며 물리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톰슨은 전자기학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을 발전시키고, 움직이는 전하를 띤 입자의 전자기 질량 개념을 도입하여 속도에 따라 질량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보였다.[16] 또한, 화학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연구를 통해 초기 계산화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15] 에너지 변환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통해 모든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16]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음극선 연구를 통해 전자를 발견한 것이다(자세히 보기). 1897년, 그는 음극선이 원자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음전하 입자들의 흐름임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고, 이 입자를 "소체(corpuscle)"라고 명명했다.[28][30] 이 발견은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으며, 현대 원자물리학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이 발견을 바탕으로 양전하 구름 속에 전자가 박혀 있는 형태의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자세히 보기).[15][31][32]
또한, 1912년에는 양극선(커낼선) 연구 과정에서 네온 기체가 질량이 다른 두 종류의 원자(네온-20과 네온-22)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여, 안정적인 원소의 동위원소 존재를 최초로 실험적으로 증명했다(자세히 보기).[3][40][41] 이 연구는 질량 분석법 개발의 기초가 되었다.[15][42] 이 외에도 1905년 칼륨의 자연 방사능을 발견했으며,[45] 1906년에는 수소 원자에는 전자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46][47]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톰슨은 1906년 "기체의 전기 전도에 대한 이론적 및 실험적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1908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12년에는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을 받았다. 1918년에는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임명되어 1940년 사망할 때까지 그 직책을 유지했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으며, 아이작 뉴턴과 그의 제자였던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묘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17][18]
톰슨은 뛰어난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연구 조교 및 제자 중 찰스 글로버 바클라,[19] 닐스 보어,[20] 막스 보른,[21] 윌리엄 헨리 브래그,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22] 찰스 톰슨 리스 윌슨[23] 등 6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24]과 어니스트 러더퍼드[25] 2명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아들인 조지 패짓 톰슨 역시 전자의 파동성을 증명한 공로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26]
톰슨은 다수의 중요한 저서를 남겼다. 그의 수상 경력이 있는 석사 논문 소용돌이 고리의 운동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the motion of vortex rings, 1883)은 켈빈 경의 원자 와류 이론을 수학적으로 다루며 원자 구조에 대한 그의 초기 관심을 보여준다.[1][16] 주요 저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톰슨은 그의 경력 동안 수많은 상과 영예를 안았다. 그는 1884년 왕립학회 회원(FRS)으로 선출되었고[23],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1902), 미국 철학 학회(1903),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1903) 등의 외국 회원으로도 선출되었다.[49][50][51]
톰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질량 분석법에서 질량 대 전하 비를 나타내는 단위로 톰슨(기호: Th)이 제안되었다.[53] 케임브리지 대학교 웨스트 캠브리지 사이트의 J. J. 톰슨 애비뉴,[54] 국제 질량 분석학 재단의 톰슨 메달 상,[55] 물리학 연구소의 조지프 톰슨 메달 및 상[56] 등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딥 리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톰슨 크레센트가 있다.
3. 1. 전자의 발견
윌리엄 프라우트(William Prout)나 노먼 록여(Norman Lockyer)와 같은 일부 과학자들은 원자가 더 기본적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 단위는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 크기일 것으로 생각했다.[1] 그러나 19세기 말까지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음극선의 본질을 두고 이것이 에테르를 매질로 하는 파동인지, 아니면 질량을 가진 입자의 흐름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조지프 존 톰슨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음극선이 음전하를 띤 입자들의 흐름이며, 이 입자들이 원자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증명하여 전자의 존재를 밝혔다.톰슨은 음극선과 음극선관(크룩스관)을 이용해 세 가지 주요 실험을 수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톰슨은 음극선에서 음전하를 분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는 음극선 경로에서 벗어난 곳에 전위차계를 설치한 음극선관을 제작했다. 자기장을 이용해 음극선을 휘게 했을 때, 음극선이 전위차계 쪽으로 향할 때만 전하가 측정되었다. 이를 통해 톰슨은 음전하가 음극선과 분리될 수 없는 동일한 것임을 입증했다.[28]

'''두 번째 실험'''은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휘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전 실험가들은 이를 관찰하지 못했는데, 톰슨은 그 원인이 실험관 내부에 남아있는 가스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진공 상태의 음극선관을 제작했다. 음극에서 나온 음극선은 금속 슬릿을 통과하며 좁은 빔이 되고, 두 개의 평행한 금속판 사이를 지나게 했다. 이 금속판에 전압을 걸어 전기장을 만들자, 음극선 빔은 전기장의 방향에 따라 휘어졌다. 전기장의 극성을 바꾸면 휘는 방향도 반대가 되었다. 이 실험으로 톰슨은 음극선이 음전하를 띤 입자처럼 전기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3]
'''세 번째 실험'''에서 톰슨은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해 음극선이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하여 음극선 입자의 질량 대 전하 비(m/e, 비전하)를 계산했다. 그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세기를 조절하여 두 힘에 의한 편향이 서로 상쇄되도록 만들었다. 이 측정 결과, 음극선 입자의 질량 대 전하 비는 가장 가벼운 이온으로 알려진 수소 이온(H+)의 약 1/1000 수준으로 매우 작다는 것을 발견했다.[30] 이는 음극선 입자가 매우 가볍거나, 혹은 매우 큰 전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어떤 종류의 금속을 음극으로 사용하든 동일한 비전하 값을 얻었다. 이는 이 입자가 모든 종류의 원자에 보편적으로 들어있는 구성 요소임을 시사했다.
(전기적 편향)
(자기적 편향)
여기서 e는 입자의 전하, m은 질량, v는 속도, l은 편향판의 길이, F는 전기장 세기, H는 자기장 세기이다.
두 편향을 같게 만들면(), 로 비전하를 계산할 수 있다.[30]
톰슨은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음극선은 음전하를 띠고 있으며, 마치 음으로 대전된 것처럼 정전기력에 의해 휘어지고, 자기력에 의해 이 힘이 음으로 대전된 물체에 작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것들이 물질의 입자에 의해 운반되는 음전하라는 결론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30]
그는 이 새로운 입자를 "'''소체'''(corpuscle)"라고 불렀다. 톰슨은 이 소체들이 음극선관 내부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기체 원자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음극 근처의 매우 강한 전기장에서 기체 분자들이 해리되어, 보통의 화학 원자로가 아니라, 간단히 소립자(corpuscles)라고 부를 이러한 원시 원자들로 분리되고, 이 소립자들이 전하를 띠고 전기장에 의해 음극에서 방출된다면, 이들은 음극선과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44]
이는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단위가 아니라,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톰슨은 원자가 양전하를 띤 구름 속에 음전하를 띤 소체(전자)들이 박혀 있는 형태일 것이라는 원자 모형을 제안했는데, 이는 "건포도 푸딩 모형(plum pudding model)"으로 알려졌다.[15][31][32] 이 모형에서 전자들은 정지해 있지 않고 양전하 구름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톰슨이 발견한 입자는 이후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조지 존스턴 스토니(George Johnstone Stoney)가 1891년에 제안했던 이름인 "'''전자'''(electron)"로 더 널리 불리게 되었다.[29][35][36] 톰슨 자신은 한동안 "소체"라는 용어를 고수했지만, 1914년경에는 "전자"라는 명칭을 받아들였다.[38]
톰슨의 발견은 원자물리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그의 건포도 푸딩 모형은 이후 그의 제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알파 입자 산란 실험을 통해 수정되었다. 러더퍼드는 원자의 양전하가 중심의 매우 작은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톰슨은 "전자의 발견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1897년에 발표한 내용 중 일부는 이미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보고되기도 했다.[62]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의 체계적인 실험과 명확한 결론은 전자의 존재를 과학계에 확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63]
3. 2. 원자 모형 제시
윌리엄 프라우트(William Prout)와 노먼 록여(Norman Lockyer) 등 여러 과학자들은 원자가 더 기본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이 단위를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의 크기라고 생각했다. 톰슨은 1897년에 원자의 기본 단위 중 하나가 원자보다 1,000배 이상 작다는 것을 최초로 제안했는데, 이는 현재 전자(electron)로 알려진 아원자 입자를 제시한 것이다.[28]톰슨은 음극선의 특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발견에 도달했다. 그는 1897년 4월 30일, 당시 필립 레나르트(Philipp Lenard)의 레나르트선으로 알려진 음극선이 원자 크기의 입자보다 예상보다 훨씬 더 멀리 공기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28] 그는 음극선이 열 접합부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열을 측정하고 이를 자기장에 의한 편향 정도와 비교하여 음극선의 질량을 추정했다. 실험 결과, 음극선은 수소 원자보다 1,000배 이상 가볍고, 어떤 종류의 원자에서 방출되었든 그 질량이 동일하다는 점이 시사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톰슨은 음극선이 매우 가볍고 음전하를 띤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입자들이 원자를 이루는 보편적인 구성 요소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입자를 "미립자(corpuscles)"라고 명명했지만, 후대의 과학자들은 톰슨의 발견 이전인 1891년 조지 존스톤 스토니(George Johnstone Stoney)가 제안했던 "전자(electron)"라는 이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29]
1897년 4월 당시, 톰슨은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편향될 수 있다는 초기 징후만을 포착했을 뿐이었다(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와 같은 이전 연구자들은 전기적 편향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미립자의 존재를 발표한 지 한 달 후, 톰슨은 방전관 내부의 압력을 매우 낮추면 전기장을 이용해 음극선을 안정적으로 편향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한 음극선 빔의 편향 정도를 비교하여, 이전의 추정치를 재확인하는 더 정확한 질량 대 전하 비율(e/m) 측정값을 얻었다.[30] 이는 전자의 비전하를 측정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전자 하나의 전하량 자체는 1909년 로버트 앤드류스 밀리컨(Robert Andrews Millikan)의 기름방울 실험(oil drop experiment)을 통해 측정되었다.)
톰슨은 이 미립자들이 자신의 음극선관(cathode-ray tube) 내부에 남아있는 미량 기체의 원자에서 방출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원자가 더 작은 입자로 쪼개질 수 있으며, 미립자가 바로 그 원자의 구성 요소라고 결론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1904년, 톰슨은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그는 원자를 양전하를 띤 물질이 구름처럼 퍼져 있는 구체로 가정했으며, 음전하를 띤 미립자(전자)들이 이 양전하 구름 내부에 박혀 있다고 생각했다. 정전기력이 이 미립자들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보았다.[15] 원자 전체가 전기적으로 중성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미립자들이 균일하게 분포된 양전하의 바다 속에 떠 있다고 제안했다. 이 모델은 마치 건포도가 박힌 푸딩과 같다고 하여 "건포도 푸딩 모형(plum pudding model)"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만 톰슨의 모델에서 전자들은 정지해 있지 않고 빠르게 공전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31][32] 톰슨의 이러한 발견은 발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과 에밀 비히에르트(Emil Wiechert)가 독자적으로 음극선(전자)의 질량 대 전하 비율을 정확하게 측정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33]
이 입자에 대해 "전자(electron)"라는 명칭이 과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데에는 조지 프랜시스 피츠제럴드(George Francis FitzGerald), 조셉 라머(Joseph Larmor), 헨드릭 로렌츠(Hendrik Lorentz) 등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34] 이 용어는 원래 조지 존스톤 스토니(George Johnstone Stoney)가 1891년에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기본 전하 단위를 임시로 부르기 위해 제안한 이름이었다.[35][36] 톰슨 자신은 수년 동안 "전자"라는 용어 사용을 꺼렸는데, 이는 일부 물리학자들이 "음전자(negative electron)"가 음전하의 기본 단위인 것처럼 "양전자(positive electron)"가 양전하의 기본 단위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입자가 명백히 음전하를 띤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립자(corpuscle)"라는 용어를 고수했다.[37] 그러나 결국 1914년 자신의 저서 "원자 이론(The Atomic Theory)"에서 "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기존 입장을 바꾸었다.[38] (참고로, 1920년 러더퍼드와 그의 동료들은 수소 이온의 핵을 "양성자(proton)"라고 명명하기로 합의하여, 독립적으로 존재 가능한 가장 작은 양전하 입자에 대한 별도의 이름을 확립했다.[39])
요약하자면, 톰슨은 음극선이 음전하를 띤 입자(미립자, 즉 전자)의 흐름이며[30][67], 이 입자들은 음극 근처 기체 분자가 강한 전기장에 의해 분해되면서 방출되는 원자의 구성 요소라고 주장했다.[44][67] 이를 바탕으로 그는 양전하 구름 속에 전자들이 박혀 있는 푸딩 모형을 제안했다. 비록 이 모델은 훗날 그의 제자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원자핵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수정되었지만, 원자 내부 구조에 대한 이해를 크게 진전시킨 중요한 발견이었다.
3. 3. 동위원소와 질량 분석
1912년, 조지프 존 톰슨은 당시 양전하를 띤 입자의 흐름인 커낼선(양극선)의 구성 성분을 연구하던 중, 그의 연구 조교 F. W. 애스턴과 함께 네온 이온의 흐름을 자기장과 전기장을 통과시키는 실험을 수행했다.[3] 사진 건판을 이용해 이온의 편향 정도를 측정한 결과, 건판 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경로를 나타내는 흔적(빛 점)이 관찰되었다.
이를 통해 톰슨은 네온이 원자 질량이 다른 두 종류의 원자, 즉 네온-20과 네온-22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 내렸다.[40][41] 이는 안정적인 원소에서 동위원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사례였다. 비록 프레더릭 소디가 이전에 방사성 원소의 붕괴를 설명하면서 동위원소의 존재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톰슨의 실험은 안정 동위원소의 존재를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톰슨이 질량 차이에 따라 네온 동위원소를 분리한 이 방법은 질량 분석법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후 그의 제자인 애스턴과 A. J. 뎀스터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일반적인 분석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15][42]
4. 기타 업적
톰슨은 연구에만 몰두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는 동시에 캐번디시연구소를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한 관리자이기도 했다.[45] 대학이나 칼리지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주로 학생들이 낸 수업료를 재원으로 연구소 건물을 두 채 더 증축했다.[45] 왕립학회를 통해 영국 정부의 과학 지원금 일부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캐번디시 연구소는 다른 정부 보조금이나 외부 기부금 없이 운영되었다.[45] 한 후원자의 기증으로 얻은 작은 액체-공기 기계는 톰슨의 양극선 연구에 필수적이었으며, 이 연구는 당시 새롭게 발견된 원자핵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45]
물리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자신의 연구 성과만큼이나 다른 연구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45]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학생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고, 이들 중 다수가 고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었다.[45] 특히 그의 제자 중 7명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45] 톰슨은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정기적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위한 강의를 진행했다.[45] 그는 가르치는 일이 연구자 스스로 기본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45] 또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 기존 문헌을 먼저 읽기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명확히 정립한 후에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연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45]
그 외 주요 과학적 발견은 다음과 같다.
5. 수상 및 서훈
톰슨은 그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수많은 상과 영예를 받았다.
연도 | 상 이름 |
---|---|
1882년 | 아담스 상 |
1887년, 1892년, 1913년 | 베이커리언 메달 |
1894년 | 왕립 메달[23][48] |
1902년 | 휴즈 메달[23][48] |
1902년 | 호지킨스 메달 |
1906년 | 노벨 물리학상 ("기체의 전기 전도에 관한 이론 및 실험적 연구")[23][48] |
1910년 | 엘리엇 크레슨 메달 |
1914년 | 코플리 메달[23][48] |
1915년 | 앨버트 메달 |
1922년 | 프랭클린 메달 |
1925년 | 패러데이 메달 |
1908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으며, 1912년에는 오더 오브 메리트(Order of Merit, OM)를 받았다.
1884년 6월 12일 영국 왕립 학회 회원(Fellow of the Royal Society, FRS)으로 선출되었고,[23][48][61]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왕립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61] 또한, 1902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국제 명예 회원,[49] 1903년 미국 철학 학회의 국제 회원,[50] 그리고 1903년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51]
톰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여러 장소와 상에 그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 1927년 11월, 케임브리지의 레이스 스쿨에 그의 이름을 딴 톰슨 건물이 개관했다.[52]
- 1991년, 질량 대 전하 비율을 측정하는 단위로 톰슨(기호: Th)이 제안되었다.[53]
- 케임브리지 대학교 웨스트 캠브리지 캠퍼스의 J. J. 톰슨 애비뉴는 톰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54]
- 국제 질량 분석학 재단이 후원하는 톰슨 메달 상은 톰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55]
- 물리학 연구소 조셉 톰슨 메달 및 상은 톰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56]
- 캐나다 온타리오주 딥 리버의 톰슨 크레센트(Thomson Crescent)는 러더퍼드 애비뉴와 연결된다.
6. 에피소드
- 시라스 죠지로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유학했을 때, 톰슨은 시라스의 답안에 "당신의 답안에는 당신 자신의 생각이 하나도 없다"라는 코멘트를 적어 돌려주었다고 한다.[68] 이 일화는 NHK 드라마 스페셜 「시라스 죠지로」(2009년)에서도 인상적으로 묘사되었다.
- 시라스 죠지로의 증언에 따르면, 톰슨은 산책하며 사색에 잠기는 습관이 있었는데, 생각이 깊어지면 길 한가운데에서도 멈춰 서곤 했다. 이 때문에 차량 통행을 막는 일이 잦았지만, 경찰은 톰슨에게 주의를 주지 않고 그가 움직일 때까지 차량 통행을 멈추게 했다고 한다.[68]
- 톰슨은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 시절 직접 정원의 잔디를 손질했다. 어느 날 허름한 차림으로 잔디 손질에 몰두하던 톰슨에게, 시찰을 온 미국의 한 부유한 인사가 그를 정원사로 착각하고 "십 엔짜리"(출전 원문 표기)를 건네며 손질 비결을 물었다. 톰슨은 "물을 주고, 롤러를 사용하세요"라고 답하며 돈과 거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거부가 다시 십 엔짜리를 건네주자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화가 난 거부가 또 십 엔짜리를 주며 "그런 건 알고 있다!"라고 소리치자, 톰슨은 세 장의 십 엔짜리를 주머니에 넣으며 "그걸 매일 반복해서 500년이 지나면 이렇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 30엔이야말로 내가 평생 정직하게 번 유일한 돈"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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